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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줄거리
1987년 1월 14일, 임진각 망향단에서 박처원 대공수사처장(김윤석)이 가족사진을 놓고 그 앞에 훈장을 놓고 제사를 치른다. 그는 1950년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월남한 실향민이기 때문에 임진각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 어투에도 평안도 사투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제사가 마무리되는 즈음 박처원의 부하 유정방에게 전화가 온다.
같은 날 오후 12시 30분, 구급차 1대가 남영역을 스치듯이 지나가고, 빠른 속도로 골목길을 달린다. 구급차 안에는 중앙대학교 용산병원 의사 오연상과 간호사 1명, 경찰 2명이 창문을 커튼으로 가리고 급하게 이동 중이었다. 경찰 1명이 무전기로 정문 개방이라 외치고 오연상이 호기심으로 커튼을 걷으려고 하자, 다른 1명이 험하게 제지한다. 급하게 달리는 구급차의 목적지는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다. 대공분실 안에서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여진구)이 쓰러져 있었고 경찰들이 긴박하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중이었다. 고문을 당하던 박종철이 사망한 상황이었으며, 급히 오연상 교수가 달려와서 이미 사망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걸 들은 경찰들 중 조한경(박희순)은 소생시켜달라는 요구를 해서 가슴에 묻은 물기를 닦아 내고 강심제를 주사한다.
망향단에서 제사가 마무리될 즈음, 박처원에게 '남영동 대공분실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곧바로 제사를 마치고 박처원은 남영동 대공분실로 이동하고, 오연상 교수는 심폐소생술을 하며 살려보려 했으나, 이미 소생은 불가능했다. 박종철의 시신은 옮겨지고 마침 박처원이 상황을 파악하러 도착한다. 오연상 교수와 간호사는 급히 건물을 나와서 병원으로 복귀한다.
대공분실에서는 의사가 목격자가 되었다며 질책하지만, 박처원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점심을 먹으라며 경찰들을 보낸다. 박종철의 시신을 화장하라는 취지로 명령한 후, 으리으리한 요정에서 안기부의 장 부장(문성근)과 양주(로얄 살루트 21년)를 나눠 마시며 '재야인사 김정남(설경구)을 미끼로 삼아 김영삼, 김대중 등의 거물 정치인들을 단칼에 격멸하겠다'고 선언한다. 안기부장은 흡족한듯 웃으며 술자리를 즐기다가 다 끝나고 일어나면서 '그런데 그 서울대생...문제 없겠죠?'라며 지나가듯 물어보고 박처원은 관례대로 처리하겠다고 답한다.
같은 시각, 화염병을 제조하다 체포된 한 대학생을 갈구며 박처원과 똑같은 양주를 힙 플라스크에 담아 짜장면과 함께 먹방을 찍으려던 최환 검사(하정우)에게, 공안경찰들이 찾아오더니 "이런 거 드시지 마시고 저희랑 같이 가시죠.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라며 아부했고, 환은 뭔가를 기대했던 듯 어디 갈 거냐고 반색한다. 그러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서류 한 장을 내밀고 도장 하나만 찍어달라고 한다. 이에 그는 '웬일로 공짜술을 얻어먹나 했다'며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서류를 확인하기 시작한다.
서류는 치안본부에서 작성한 대학생 박종철 군의 사망경위서와 화장동의서.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죽은 지 8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부검은 고사하고 장례도 치르지 않고 화장부터 하겠다는 것. 박 계장과 윤 반장은 부산 영도 경찰서에서 부친 동의서를 받았다고 하지만 세상 천지의 어느 부모가 자식이 죽었다는데 비인간적으로 마지막 얼굴도 안 보고 화장을 하라고 하겠는가. 당연히 환은 구라도 적당히 치라며 믿지 않았다. 이에 박 계장은 대공업무이니 따지지 말고 도장이나 찍으라며 강압적으로 말했지만 이에 더더욱 분노한 그는 박 계장을 밖으로 쫓아냈고 남은 윤 반장이 "왜 이러세요, 영감님! 저희 한 번만 살려 주세요!" 하는 식으로 애걸복걸한다.
도장을 못 찍겠다고 하자 온갖 라인을 통해 압박을 넣는 공안당국의 태도에 진노한 최환 검사는, 전화기를 깨부수고 시신을 화장하는 대신 시신보존명령서를 발부해 버린 다음, 사방에서 '이 말 안 통하는 꼴통 새끼 잡아들이라'고 난리가 난 가운데 목욕탕으로 잠적한다. 그리고 아랫기수이자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이홍규 검사를 불러내어 '쥐약 좀 놔야겠다(언론에 정보를 흘리라)'고 부탁한다. 영화의 자세한이야기는 티빙에서 시청할 수 있다.
등장인물
- 박처원(김윤석) : 평안남도 용강(現 남포시) 출신. 1950년 월남.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장(치안감, 2급)으로서 남영동 대공분실의 총책임자이자 희대의 망언인 "수사관이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쓰러졌다"의 발언의 주인공이다. 북에서 월남한 인물로, 평안도 사투리를 쓴다.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영화 특성에 맞게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진행되는 전개에서도 높은 비중과 출연을 보여주는 사실상 주인공이자 메인 빌런.
가족처럼 거둔 머슴이 뒤통수를 치고 인민재판을 벌여 온 가족이 몰살당하고 본인만 간신히 살아남아 월남했으며, 이 때문에 철저한 반공주의자다. 완장 차고 광기에 휩싸인 자한테 가정을 파괴당한 사람이, 분노와 증오로 가득차 반대편에서 계급장을 차서는 다른 무고한 이들과 그 가정을 파괴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말 그대로 가해자가 된 피해자다. 전두환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남영동의 수장답게 상관을 두들겨 패는 것은 물론이고, 치안본부장(경찰청장)에게까지 막대하는 막가파로 나오며 그와 별개로 부하들은 각별히 아낀다.
- 최환(하정우) :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장. 각종 시국 사건 담당으로 화염병을 만들다 체포된 대학생을 갈구는 모습으로 첫 등장한다. 이후 짜장면을 먹으려다 공안경찰들에게 죽은 박종철의 화장 동의 서류에 도장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는데, 서류를 살피다가 죽은 지 8시간밖에 안 된 아들, 그것도 서울대학교 다니는 아들을 장례도 안 치르고 화장부터 한다는 정황을 수상히 여겨 도장 대신 시신보존명령서를 발부해 "시신에 손대는 순간 싹 다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걸어버리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처음에는 해외 기자들과 연이 있다며 부검을 할 것이라는 뜻을 밝혀 박처원과 대립할 것처럼 보였지만, 검사 자리를 그만둔 이후에 자신의 자료를 윤상삼에게 흘려주면서 바톤터치했다. 중 후반부에는 한병용과 연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 한병용(유해진) : 영등포교도소 교도관. 교도관 노조 설립 시도 혐의로 파면 후 복직된다. 이름의 모티브는 실제 교도관인 한재동의 '한'과 전병용의 '병용'을 합쳤다. 동아일보 해직기자 이부영과 박종철을 고문한 두 형사 조한경과 강진규가 수감된 교도소의 교도관. 계급은 교사(8급).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교도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부영과 김정남을 연결하는 '비둘기' 역할이었다. 박종철의 죽음이 지독한 고문에 의한 치사라는 사실을 알고는 이를 재야 인사에게 알리기 위해 조카 연희에게 위험한 심부름을 시킨다. 후에 위험을 무릅쓰고 김정남을 만나러 절로 향하다 형사에게 얼굴을 들켜, 그 날밤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무자비하게 연행당한다. 모진 고문에 끝까지 버티지만, 박처원이 가족을 들먹이며 협박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김정남을 밀고하게 된다. 사건이 끝난 후 풀려나 누나와 통화를 한다.
- 이연희(김태리) : 독재정권을 없애기 위해 온몸을 굴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는 외삼촌과는 대조적으로 삼촌이 심부름을 시킬 때마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며 툴툴거리는 등 시위에 소극적이다. 하지만 우연히 시위 현장에 휘말렸다가 어느 잘생긴 남학생을 만나고, 주변 사람들이 다치게 되면서 점차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선후배 사이로,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았을 당시 그 현장에 있었다고 한다.
- 조한경(박희순) : 치안본부 대공수사처 2단 5과 2계 학원분과1반장(경위(6급)
고문에 가담한 공안경찰 중 하나로 윗선의 꼬리 자르기로 인해, 고문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구속된다. 극중 악역인 남영동 경찰들 중 박처원과 함께 그나마 입체적인 인물로 나오는데 부하들에게 고문을 지휘하는 위치이며 베테랑임에도 자기가 고문한 사람들에게 죄의식과 PTSD를 느끼는 모습을 보인다. 실존 인물과 이름이 동일하다.
- 윤상삼(이희준) :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이다. 실존 인물과 이름이 동일하며, 윤상삼은 영화가 나오기 전인 1999년 간암으로 사망했다.
평론가들의 평가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영화가 등장하는 것이 아주 드문 일은 아니지만, 본작은 사회적, 역사적 메시지까지 담아낸 걸작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일반 관객과 평단 모두 가리지 않고 호평하여 상영 종료 이후에도 꾸준히 사랑받는 영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장준환 감독은 이 작품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연출력을 공고히 했고, '작품성에 비해 주목도가 낮은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비로소 벗어던질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고증에 각별한 신경을 써서 당대 열사들과 운동원들의 노고가 폄하되지 않도록 노력한 점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